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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손으로 불리는 사채업계의 큰손 장영자가 또 사기로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21일 국가경제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사채 시장의 큰손 장영자가 출소 3년 만에 6억 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번이 사기로만 4번째 구속이며 1982년에 벌였던 사건은 국가 예산 10%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기도 중독되나 장영자의 빚투는 확 줄어든 사기 스케일로 세월에 장사 없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장영자가 벌써 4번째 구속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21일 검찰은 장영자가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주변인들에게 사기행각을 펼쳐 총 6억여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고 밝혔습니다.



 장영자는 이미 올해만 세차례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왜 세차례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올해만 해도 종교재단을  세우겠다, 배우자 이름으로 주식이 묶여있다, 브루나이에 투자하겠다 등 갖가지 명목을 미끼삼아 범죄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이 지난 1982년을 시작으로 벌써 4번이나 구속으로 장영자는 지난 1982년 당시 금액으로 2천억원 대의 어음 사기 협의로 구속됐다가 10년 후 가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출소 22개월 만인 1994년 140억원 사기건으로 다시 구속돼 4년뒤 광복절특사로 사회에 복귀했었습니다. 장영자의 범죄는 여기서도 이어집니다.



  출소 24개월 후인 2000년 220억원대의 화폐 사기건으로 복역한 바 있으며 장영자는 이번에도 교도소 출소 6개월만에 죄를 저질러 제 버릇 개 못준다라는 말을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장영자의 사기액수를 물가상승과 상관없이 계산해도 알려진 것만 2366억에 달해 천문학적 액수에 경악하게 합니다. 그래서 단군 이래 최대 금융스캔들이라고도 합니다.




  단군 이래 최대 금융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장영자가 사전오기급인가 다시금 재판에 넘겨졌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장영자는 6억 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장영자는 2015년 1월 출소한 뒤로 지난해까지 총 네 차례에 걸려 사기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으며 장영자는 세상을 떠난 남편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 명의의 재산으로 불교 재단을 만들려고 하는데 현금이 필요하다며 2명에게 총 3억6000만 원을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밖에도 남편 명의 삼성전자 주식이 담보로 묶여 있는데 1억 원을 빌려주면 세배로 갚겠다고 속여 돈을 받아 챙겼고 2015년 출소한 뒤 가로챈 돈은 6억2000만 원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장영자는 김영삼 정부 당시 금융실명제 시행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이 사건은 장영자와 이철희를 위시로 은행장 2명과 공영토건 일신제강 등 당시 재벌가들 32명이 구속되면서 수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장영자와 이철희는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었으며 이철희가 먼저 가석방된 뒤 장영자는 10년 뒤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장영자는 1994년 다시 100억 원대의 어음 사기사건으로 구속되었고 2001년 5월에도 220억 원대의 구권화폐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돼 세 번째로 복역했습니다. 빌리는 능력도 대단하다, 이제 들어가면 그곳에서 일생을? 등의 네티즌 반응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장영자

張玲子


  장영자는 1944년 10월 25일에 태어난 대한민국 전 기업가였으며 경제사범입니다. 전라남도 목포 출신으로 계성여자고등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제5공화국 당시 자신의 2번째 남편 이철희와 함께 거액의 어음 사기 사건에 연루되며 큰손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전라남도 목포시내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장영자는 아홉 살 때인 1953년 서울에 올라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학에 다니다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과에 편입, 목포의 거상이며 한민당 목포지구당을 지낸 차보륜은 그의 고모부였고, 야당 정치인인 김대중의 첫 번째 부인 차용애는 그의 외사촌 언니라고 합니다.


  1982년에 장영자는 남편 이철희를 내세워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면서 기업자금지원의 대가로 지원금의 몇 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유통하는 수법으로2천억 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여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어음 사기 혐의로 1982년 5월 4일 검찰에 구속되었고 당시 장영자 부부는 물론 은행장 2명과 내로라하는 기업인 등 모두 32명이 구속됐었습니다. 장영자의 형부이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씨도 사건에 휘말려 구속되었고 1983년 희대의 어음사기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형기를 5년남겨 둔 1992년 3월 가석방되었습니다.



1차 구속 당시 함께 구속됐던 남편 이철희는 1991년 6월 먼저 가석방되자 곧바로 장영자가 수감 중이던 청주교도소 근처에 방을 얻어 이듬해 3월 장영자가 가석방될 때까지 옥바라지하는 부부애를 과시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출소 1년10개월 만인 1994년 1월 다시 140억 원의 차용사기 사건으로 다시 구속돼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되었습니다.



  장씨는 1998년 8.15특사로 출소했으나 2년 후 2000년 구권 화폐 사기사건 때문에 2001년 복역되었고 구속 직전까지 자신은 피해자이고 권력투쟁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때 구속되면서 1992년의 가석방이 취소되는 바람에 남은 형을 복역하고 재판받았으며, 2004년 장영자에게는 징역 2년이, 남편 이철희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습니다. 장영자가 김모씨로부터 가로챘다는 4억 600만원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며 2006년에는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5년 1월 22일 만기 출소하였습니다. 남편 이철희는 1심대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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